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서강대2007수시2-2(사회/커뮤니...학부) 해설&첨삭

기출해설(논술형)/서강대 2008/10/01 23:32

<문제 1 : 30%, 500~600자>
   다음 세 제시문에 나타난 인간관의 특징을 요약()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해 그 관점의 한계()를 밝힌 다음, 다른 두 관점을 통해 그 한계를 지양(止揚)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논술하라.

(지시문해설)


[가]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삶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목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하느님께서 다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온 땅 위에서 낟알을 내는 풀과 씨가 든 과일 나무를 준다. 너희는 이것을 양식으로 삼아라. 모든 들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도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준다.”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엿샛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이리하여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이렛날에는 쉬시고 이 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 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순서는 위와 같았다.
  
- 『성서』

(해설보기)


[나] 뇌가 100억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기계이고, 정신이 제한된 숫자의 화학 및 전기 반응의 총체적 활동이라는 말로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다면, 인간의 전망을 가로막는 경계선이, 즉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이고 우리의 영혼은 자유롭게 날 수 없다는 한계가 설정된다. …중략…
  
만일 인류가 다윈의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한다면, 생물 종은 신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우연과 환경의 필연에 의해 창조될 것이다. 신은 물질을 이루는 최소 단위인 쿼크와 전자 껍질의 기원으로서 여전히 탐구될 수는 있으나, 종의 기원으로서는 아니다. …중략… 우리가 은유적 또는 비유적 표현을 써서 이 확고한 결론을 아무리 윤색한다 해도, 그것이 19세기의 과학적 탐구가 남긴 철학적 유산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 에드워드 D. 윌슨,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해설보기)


[다] 인간의 기능은 어떤 종류의 생이요, 이 생은 이성적 원리를 내포하는 정신의 활동 내지 행위이며, 훌륭한 사람의 기능이란 이러한 활동 내지 행위를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이며, 또 어떠한 행동이나 거기 알맞은 덕을 가지고 수행될 때 잘 수행되는 것이기에, 인간의 선이란 결국 덕에 일치하는 정신의 활동이라 하겠다. 그리고 덕이란 것이 하나 이상 있다고 하면, 그 중의 가장 좋고 가장 완전한 것에 일치하여 정신이 활동하는 것이 인간의 선이다. 그런데 그것은 온 생애를 통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한 마리의 제비가 날아온다고 봄이 오는 것도 아니요, 하루아침에 여름이 되는 것도 아닌 것처럼, 인간이 복을 받고 행복하게 되는 것도 하루나 짧은 시일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해설보기)

(답안작성 도우미)

(예시답안)



<문제 2 : 30%, 500~600자>
   제시문 [가]는 지은이가 1962년에 발표한 글의 일부이다. [나]는 같은 지은이가 40년이 지난 2002년에 자기가 썼던 글 [가]에 관해 대담한 내용의 일부이다. [가] 시점과 [나] 시점에서 한국 문화를 보는 지은이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유추해 보고,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그 동안의 한국 사회의 변화에 비추어 논술하라.

(지시문해설)


[가]  
   물에 빠지거나 뜻하지 않은 조난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구원을 청한다. 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명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래도 그것은 짐승의 울음과는 다른 데가 있다. 인간의 비명인지라 아무리 짧은 말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하나의 뜻이 숨어 있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나라에 따라 그 비명의 뜻도 서로 다르다.
  
영국인들은 “헬프 미(Help me)!”라고 하고, 일본인들은 “다스케테 구레”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에는 “사람 살려”다. 그것을 분석해 볼 때 짤막한 말 속에도 각기 그 나라의 민족적 사유방식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헬프 미”나 “다스케테 구레”는 다 같이 도와달라는 뜻이다. 다만 영어는 “나를 도와달라”지만 일본의 경우는 그냥 “도와달라”고만 되어 있다. 사경 속을 헤매면서도 ‘나(자아)’를 내세우고 있는 서구인들은 확실히 동양인인 일본 사람보다 개인의식이 강한 것 같다. 하지만 ‘도와달라’는 뜻만은 피차 다를 것이 없다.
  
“헬프 미”나 “다스케테”라는 말은 “살려달라”는 것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힘을 좀 보태달라는 것이다. ‘제로(零)’에서 구원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힘을 보조해 달라는 의미가 잠재해 있다. 죽음 속에서도 주체적인 힘을 잃지 않으려는 흔적이 보인다.
  
그러므로 “도와달라”는 것과 “살려달라”는 것은 다 같은 구원의 요청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그 뜻과 태도가 다른 것일까! 우리는 위급한 경우를 당했을 때 그냥 살려달라고만 한다. 그것은 완전한 절망과 무력과 자기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살려달라는 말을 뒤집으면 “나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다”, “죽어가고 있다”란 뜻이 된다. 도와달라가 아니라 살려달라는 말은 100퍼센트의 구원을 바라는 어투다.
  
나무에 비료를 주는 것과 같은, 늙은이에게 지팡이를 주는 것과 같은 그런 도움이 아니라 시체나 다를 바 없이 쓰러져버린 사람을 업어가는 일이다. 전적으로 자기 운명을 , 자기 목숨을, 자기 몸을 타인에게 내맡기려는 행위다. 자기를 죽은 것으로 가정해 놓고 남의 도움을 받으려는 구원이었기 때문이다.
  
“사람 살려” 식의 비극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들어왔고 또 듣고 있다. “사흘 굶으면 양식 지고 오는 놈 있다”는 속담만 해도 그런 것이다. 이쪽은 앉아서 그냥 굶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는 양식을 짊어지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야말로 도와주려는 사람이 아니라 살려주러 온 사람이다.
  
- 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해설보기)


[나]  
   영어의 헬프 미(help me)나 불어의 에데 무아(aidez moi)나 나를 도와달라는 나 자신이 강력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개인’이 앞섭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그냥 다스케테 구레(도와 줘!)라고 말하지요. 누구를 도와달라는 것인지 주체가 없습니다. …중략…
  
그런데 한국인은 뭐라고 하나요. 위급할 때 자기도 모르게 외치는 말이 “사람 살려”입니다. “나 살려”가 아니지요. 그냥 “살려”라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라는 겁니다. 위기의 극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서양 사람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자기인데 한국 사람은 인간입니다. 개체이면서도 전체인 인간 의식이지요. 그러니 살려주는 사람도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도 같은 인간의 기반 위에 있습니다. 서양의 개체도 일본의 전체도 아니지요.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정신을 잃을 때 조건반사적으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 속에 평소에 몸과 마음에 밴 한민족의 사상이 담겨지게 되는 것이 마치 기독교인이 “지저스”라고 예수님을 찾고, 불교신자가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신이 아니라 “아이구 어머니”라고 어머니를 찾습니다. 신이 아니라 인간이지요. 서양의 잣대로 보면 한국인들은 어느 종교를 믿든 무신론자들이라고 하는데 거짓이 아닌 것 같아요. 한국인의 일상적 생활 속에서 살에 밴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교입니다. 사람을 믿고 사람을 기준으로 한 삶. 그러니까 서로 싸울 때 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서로 “너도 사람이냐”라는 말로 시작해 “너는 사람도 아냐”라는 말로 끝납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사람이 됐다’, ‘사람이 덜 됐다’입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존재(being)가 아니라 생성(becoming)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은 인간을 절대시하지 않습니다. 요즘엔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경찰에게 걸렸을 때 “인간적으로 잘 봐달라”고 하거나 “인간적으로 해결하자”고 하기도 합니다. “사람 살려”와 같은 발상입니다. …중략…
  
“사람 살려”라는 말처럼 철학적이고 동시에 미래 가치가 숨어 있는 말도 드물 것입니다. 세계 어디나 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도 기업도 예술 문화도 한 마디로 하자면 사람 살자고 하는 일, 사람 살려가 아닙니까? 이 평범한 진리를 갖고 몇 천 년 살아온 한국인이니 앞으로 또 몇 천 년 살아갈 한국인의 모습입니다.
   - 이어령, 『흙 속에 그 후 40년』

(해설보기)

(답안작성 도우미)

(예시답안)



<문제 3 : 40%, 1,200~1,400자>

   
제시문 [나]와 [다]에 근거하여 [가]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비교 분석하고, [라]의 시각에서 제시하는 해법의 타당성에 대해 논술하라.

(지시문해설&답안도우미)


[가]
   산업사회의 정부인 당신, 인간의 육체와 무쇠로 건설된 지친 거인이여. 나는 ‘정신’의 새로운 고향인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에서 왔습니다. 미래를 대신하여, 나는 과거의 당신에게 우리를 그냥 놔주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환영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통치권을 가지고 있지도 못합니다.
   …중략…
  
나는 당신이 우리에게 강요한 폭정으로부터 우리가 건설하고 있는 세계적인 사회공간의 자연적 독립을 선언합니다. 당신은 우리를 통제할 도덕적 권리나, 우리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도록 강제할 어떤 수단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정부는 국민의 동의로부터 정당한 권력을 갖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그러한 동의를 요청한 적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알지 못하며, 우리의 세계 또한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당신의 국경선 안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 존 페리 발로우,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

(해설보기)


[나]
   사이버스페이스에 관한 초기의 사고들은 ‘자유’를 ‘국가의 소멸’과 결합시켰다. 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정부는 사이버스페이스를 규제할 수 없으며, 사이버스페이스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자유롭다. 정부는 위협을 가할 수 있지만, 행위를 통제할 수는 없다. 법이 제정될 수 있지만, 그러한 법들은 무의미할 뿐이다. 어떤 정부를 세울 것인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누구도 지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매우 다른 형태의 사회일 것이다. …중략…
  
시민혁명 이후에 나타난 무정부 상태로부터 미국의 지도자들이 배웠던 것처럼, 사이버스페이스 상에서 토대를 만들고 법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결코 보이지 않는 손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되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자유의 기반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 사실 상황은 정반대이다. 우리의 선각자들이 경험했듯이, 러시아인들이 목격했듯이, 사이버스페이스를 그대로 방치할 때 자유에 대한 약속은 이행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이버스페이스가 방치된다면, 그것은 완벽한 통제의 도구로 변모할 것이다.

   - 로렌스 레식,
『코드』

(해설보기)


[다]
      그들은 거대 기관들로부터 개인들로의 중대한 권력 이양을 말하려 하고 있다. 사실 인터넷으로 인해 촉발된 진정한 변화는 ‘통제 혁명’이며, 이것은 누가 정보와 경험, 자원 등을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거대한 변혁이다. 점진적으로 그 통제의 주체는 ‘우리’가 될 것이다. …중략…
  
각종 권위의 상징들의 영향력은 점차 사라져갈 것이다. 입법자들과 공무원, 언론인, 상업 중개인, 교육자 등이 바로 그 예들이다. 수직적 명령체계는 몰락하게 되고, 기존 언론이 행해왔던 정보 통제 기능도 건너뛰게 될 것이다. 권력은 결국 최종 단계의 이용자들에게 이양될 것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핵심은 개인들을 통제의 주체로 만들어주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 앤드류 샤피로,
『통제혁명』

(해설보기)


[라]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헌법을 논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묻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어떤 가치들이 보전되어야 하는가? 특정한 생활양식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그 공간에 어떤 가치들을 확립해야 하는가? 이 가치들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실질적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구조적 가치이다. …중략…이 중에 ③-1하나가 없다면, 다른 하나는 무의미해질 것이다. ③-2견제되지 않는 구조는 권리장전에 표명된 실질적 가치에 대한 보장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으며, 실질적인 보장이 없다면 아무리 균형 잡히고 신중한 정부라 할지라도 헌법제정자들이 근본적이라고 생각했던 가치들을 손상시킬 수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를 구성할 때에도 우리는 똑같은 문제에 봉착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접근해왔다. 이미 우리는 실질적 가치에 관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접근권을 기대할 수 있는가? 사이버스페이스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공간을 보장하고 있는가? 자유롭고 개방적인 상거래를 용이하게 하는가? 이 물음들은 실질적 가치의 선택 문제이다.
  
그러나 구조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공간의 설계 속에 자의적인 규제 권력에 대한 어떤 견제 방안이 마련될 수 있는가? 어떤 견제와 균형의 장치들이 가능한가? 어떻게 권력을 분리시킬 수 있는가? 어떻게 한 통치자 또는 한 정보가 지나치게 강력해지지 않을 수 있도록 보장할 수 있는가? …중략…
  
우리는 왜 그 공간의 구조가 중요한지, 특히 왜 그 구조의 소유권이 중요한지를 이제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사이버스페이스의 코드가 소유될 수 있다면, 그것은 통제도리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소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통제는 훨씬 더 힘들어질 것이다. …중략… 구조가 실질적 가치를 확립한다. 구조를 보장하게 되면(사이버스페이스의 공간을 공개 코드로 구성하면) 많은 실질적인 가치의 문제들은 자체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해설보기)

(답안작성도우미)

(예시답안)




답안을 작성해보고 싶은 사람은 절대로 대표답안 첨삭을 먼저 보지 마세요. 문제를 낭비하게 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0 : Comment 0
◀ PREV : [1] : [2] : [3] : [4] : [5] : [6] : ... [63]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