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기출]이대2008수시2(인문) 해설&첨삭
기출해설(논술형)/이화여대 2008/09/15 20:13[문 1] [가]에 나타난 히잡 착용의 의미를 [나]의 관점에서 분석하시오. [10점]
[가]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치른 직후인 1989년 10월 ‘히잡 사건’이 발생했다. 무슬림 여중생 세 명이 수업시간에 쓰고 있던 히잡을 벗으려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는데,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국가적으로 논쟁이 벌어졌다.
히잡 착용이 프랑스에서 논란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일까? 히잡은 단순히 종교적 상징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히잡 착용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설명된다. 먼저, 정숙함의 표시를 들 수 있는데, 제3자의 성적 도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히잡을 쓴다는 것은 “나를 건드리지 마!”라는 표시다. 또한 부모의 강압 혹은 종교적 의무 사항으로 히잡을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무슬림 소녀들이 부모나 종교 지도자의 압력을 받고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공동체주의의 일환으로 히잡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나타내기 위함인데, 다른 말로 표현하면 프랑스 문화, 더 나아가 서구 문화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일반 프랑스인들에게 히잡의 착용행위는 ‘차이를 분명히 하는’ 정치적 의사의 표현이자 공동체주의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특정 종교의 단순한 상징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또한 히잡 착용은 일부다처제와 강제결혼 문제 등 흔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억압과 관련해 언급되고 있다. 더욱이 프랑스인들은 무슬림 소녀들의 히잡 착용이 자발적 행동인 경우가 매우 드물고 대부분 가족을 넘어 이슬람 급진원리주의자들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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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현대 사회에서는 정체성과 문화적 차이의 인정을 요구하는 소수집단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소수집단이 주장할 수 있는 두 유형의 요구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소수집단이 그 집단의 구성원에 대해 강제하는 요구이며, 두 번째 유형은 그 집단이 속해 있는 보다 큰 사회에 대해 주장하는 요구이다. 두 유형의 요구는 모두 집단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각각 전혀 다른 불안정성에 기인한다.
첫 번째 요구는 한 소수집단의 구성원이 전통적 관례나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반항할 때 야기되는 불안정성으로부터 그 집단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 요구는 소수집단이 속해 있는 보다 큰 사회의 정치·경제적 결정의 영향으로부터 그 집단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첫 번째 요구를 ‘내적 제재’라 한다면 두 번째를 ‘외적 보호’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요구는 모두 ‘집단 권리(group rights)’라고 할 수 있지만, 관련된 이슈는 요구 유형에 따라 전혀 다르다. 외적 보호가 소수집단과 주류집단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면, 내적 제재는 집단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소수집단은 집단 결속이라는 이름으로 구성원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집단 권력을 활용하여 내적 제재를 시행한다. 그런데 어떤 소수집단은 신정정치(神政政治)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비록 합법적인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종교적 교조주의를 강요하거나 여성을 억압함으로써 개인의 권리보다는 집단 권리를 앞세운다.
따라서 소수집단의 내적 제재를 용인해야 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실제로 내적 제재의 요구와 외적 보호의 요구가 항상 동시에 주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소수집단은 구성원에게 내적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서도 그 집단이 속한 보다 큰 사회에 대항하여 외적 보호를 추구한다. 또 어떤 집단은 외적 보호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구성원의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두 가지 모두를 요구하는 소수집단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양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단 권리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 필요하다. 나는 자유주의자로서 집단 간의 공정성을 증진시키는 외적 보호를 인정하고 이를 지지해야 하지만 전통적 권위나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구성원의 개인적 권리를 제한하는 내적 제재에는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정체성과 문화적 차이의 인정을 요구하는 소수집단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소수집단이 주장할 수 있는 두 유형의 요구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소수집단이 그 집단의 구성원에 대해 강제하는 요구이며, 두 번째 유형은 그 집단이 속해 있는 보다 큰 사회에 대해 주장하는 요구이다. 두 유형의 요구는 모두 집단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각각 전혀 다른 불안정성에 기인한다.
첫 번째 요구는 한 소수집단의 구성원이 전통적 관례나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반항할 때 야기되는 불안정성으로부터 그 집단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 요구는 소수집단이 속해 있는 보다 큰 사회의 정치·경제적 결정의 영향으로부터 그 집단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첫 번째 요구를 ‘내적 제재’라 한다면 두 번째를 ‘외적 보호’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요구는 모두 ‘집단 권리(group rights)’라고 할 수 있지만, 관련된 이슈는 요구 유형에 따라 전혀 다르다. 외적 보호가 소수집단과 주류집단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면, 내적 제재는 집단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소수집단은 집단 결속이라는 이름으로 구성원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집단 권력을 활용하여 내적 제재를 시행한다. 그런데 어떤 소수집단은 신정정치(神政政治)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비록 합법적인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종교적 교조주의를 강요하거나 여성을 억압함으로써 개인의 권리보다는 집단 권리를 앞세운다.
따라서 소수집단의 내적 제재를 용인해야 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실제로 내적 제재의 요구와 외적 보호의 요구가 항상 동시에 주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소수집단은 구성원에게 내적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서도 그 집단이 속한 보다 큰 사회에 대항하여 외적 보호를 추구한다. 또 어떤 집단은 외적 보호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구성원의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두 가지 모두를 요구하는 소수집단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양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단 권리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 필요하다. 나는 자유주의자로서 집단 간의 공정성을 증진시키는 외적 보호를 인정하고 이를 지지해야 하지만 전통적 권위나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구성원의 개인적 권리를 제한하는 내적 제재에는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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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2] [나]와 [다]는 다문화주의에 관한 글이다. [나]와 [다]의 관점을 대조하여 설명하시오. [1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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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2] [나]와 [다]는 다문화주의에 관한 글이다. [나]와 [다]의 관점을 대조하여 설명하시오. [15점]
[다]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이상(理想)은 소수집단을 주류 사회로 통합하고 그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역사적으로 크게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소수집단은 향상된 지위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탈 집단, 즉 타자로 간주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차별은 더욱 교묘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소수집단은 주류 사회로의 동화를 거부하는 대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정체성을 강조하고 자신들만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류집단 중심의 사회통합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첫째, 소수집단은 경험·문화·사회적 능력에서 주류집단과 엄연히 다른데, 집단 간의 차이가 무시되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을 필연적으로 감수해야만 한다. 동화(同化, assimilation) 전략은 기존에 배제된 집단을 주류 사회에 통합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동화는 항상 게임이 이미 시작된 후에 그리고 규칙과 기준이 정해진 이후에야 소수집단을 게임에 참여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 주류집단은 보편적 인간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특수성을 은폐한다. 집단 간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주류집단의 관점과 경험을 중립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 조작하여 소수집단에 강제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류집단의 문화제국주의는 영구화된다. 셋째, 주류집단의 “중립적” 기준을 적용하여 소수집단의 관습이나 문화를 일탈로 간주하면, 소수집단의 구성원들도 그 기준에 따라 자신의 집단을 폄하하게 된다. 문화적으로 보편적 기준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면, 예를 들어 소수집단의 자녀들은 백인의 영어식 억양과 다른 억양을 사용하는 자신들의 부모를 업신여기게 된다.
이와 달리 집단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의 긍정성을 옹호하게 되면, 소수집단은 자유롭게 되고 역동성을 얻게 된다. 지배문화가 경멸하도록 가르쳤던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이를 자신 있게 내세움으로써, 그 동안 억압 받아 왔던 소수집단은 비로소 이중적 자의식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소수집단은 자신의 문화와 특성에 대한 가치와 특수성을 옹호함으로써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 온 지배적인 문화를 상대화할 수 있게 된다.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이상(理想)은 소수집단을 주류 사회로 통합하고 그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역사적으로 크게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소수집단은 향상된 지위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탈 집단, 즉 타자로 간주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차별은 더욱 교묘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소수집단은 주류 사회로의 동화를 거부하는 대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정체성을 강조하고 자신들만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류집단 중심의 사회통합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첫째, 소수집단은 경험·문화·사회적 능력에서 주류집단과 엄연히 다른데, 집단 간의 차이가 무시되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을 필연적으로 감수해야만 한다. 동화(同化, assimilation) 전략은 기존에 배제된 집단을 주류 사회에 통합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동화는 항상 게임이 이미 시작된 후에 그리고 규칙과 기준이 정해진 이후에야 소수집단을 게임에 참여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 주류집단은 보편적 인간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특수성을 은폐한다. 집단 간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주류집단의 관점과 경험을 중립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 조작하여 소수집단에 강제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류집단의 문화제국주의는 영구화된다. 셋째, 주류집단의 “중립적” 기준을 적용하여 소수집단의 관습이나 문화를 일탈로 간주하면, 소수집단의 구성원들도 그 기준에 따라 자신의 집단을 폄하하게 된다. 문화적으로 보편적 기준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면, 예를 들어 소수집단의 자녀들은 백인의 영어식 억양과 다른 억양을 사용하는 자신들의 부모를 업신여기게 된다.
이와 달리 집단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의 긍정성을 옹호하게 되면, 소수집단은 자유롭게 되고 역동성을 얻게 된다. 지배문화가 경멸하도록 가르쳤던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이를 자신 있게 내세움으로써, 그 동안 억압 받아 왔던 소수집단은 비로소 이중적 자의식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소수집단은 자신의 문화와 특성에 대한 가치와 특수성을 옹호함으로써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 온 지배적인 문화를 상대화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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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3] [라]의 사례를 활용하여 [다]의 주장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보완하시오. [10점]
[라]
어느 사회에서나 젊은이들이 일탈자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 사회의 소수집단인 아미쉬(Amish)들은 16세에서 20대 초반까지의 기간에, 부모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시기와 교회에 헌신을 다해야 하는 시기 사이의 중간 기간을 거친다. 흔히 이 시기는 “럼스프링가(rumspringa)”라고 불린다. 럼스프링가 기간에 많은 아미쉬 젊은이들은 부모나 교회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세속적인 삶의 즐거움을 경험한다. 아미쉬의 교리는 교회에 대한 헌신 서약이 자유로운 선택임을 강조하는데, 럼스프링가는 세속적인 삶에 대한 포기가 자발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럼스프링가 기간이 끝나고 헌신 서약을 하고 나면, 공동체는 일탈의 정도가 심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멀리한다. 이 경우에 가족들도 일탈자와의 접촉을 거부하도록 요구 받는다. 그러나 럼스프링가 기간 동안에는 일탈의 정도가 아무리 심한 젊은이들과의 접촉도 가족 내 문제로 간주된다. 일탈자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은 이들이 돌아오는데, 일탈에 대한 온전한 고백과 공동체의 관례에 대한 재헌신의 서약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미쉬 공동체는 높은 집단 순응성 때문에 전체 사회의 가치가 아미쉬 공동체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내고 있다. 사실상, 사회적 변화는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만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젊은이들이 일탈자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 사회의 소수집단인 아미쉬(Amish)들은 16세에서 20대 초반까지의 기간에, 부모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시기와 교회에 헌신을 다해야 하는 시기 사이의 중간 기간을 거친다. 흔히 이 시기는 “럼스프링가(rumspringa)”라고 불린다. 럼스프링가 기간에 많은 아미쉬 젊은이들은 부모나 교회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세속적인 삶의 즐거움을 경험한다. 아미쉬의 교리는 교회에 대한 헌신 서약이 자유로운 선택임을 강조하는데, 럼스프링가는 세속적인 삶에 대한 포기가 자발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럼스프링가 기간이 끝나고 헌신 서약을 하고 나면, 공동체는 일탈의 정도가 심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멀리한다. 이 경우에 가족들도 일탈자와의 접촉을 거부하도록 요구 받는다. 그러나 럼스프링가 기간 동안에는 일탈의 정도가 아무리 심한 젊은이들과의 접촉도 가족 내 문제로 간주된다. 일탈자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은 이들이 돌아오는데, 일탈에 대한 온전한 고백과 공동체의 관례에 대한 재헌신의 서약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미쉬 공동체는 높은 집단 순응성 때문에 전체 사회의 가치가 아미쉬 공동체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내고 있다. 사실상, 사회적 변화는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만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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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4] 수리논술(생략)
[문 5] 수리논술(생략)
※ [6-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문 6] [가], [나], [다]에 담긴 ‘물’의 의미를 비교·대조하여 설명하시오. [15점][가]
우리 조상들은 물을 어떻게 또 어떤 모습으로 지니고 있는 것일까? 새벽이 열리는 시각에서부터 우리는 그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즉, 미명(未明)이라 불리는 그 시각에 우리네 조상들은, 그 한 어머님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었다. 그 시각을 우리는 존재가 비롯하는 때라고 불러도 좋다. 새벽은 그러한 때이다. 그 물은 그렇게 새벽을, ‘처음’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처음은 맑음 그대로의 ‘순수’이다. 새벽 샘물은 그 순수를 담고 있었다. 바위틈에서, 혹은 땅의 깊은 바닥에서, 휘저은 탁함이 아직 거기에는 없는 그 시각에 물은 그렇게 솟아 그렇게 맑다. 존재하는 처음 모습이 그럴 것임에 틀림없다. 온갖 것의 처음은 바로 그랬으리라. 새벽 샘물에 담긴 가장 맑음의 순수, 그것은 그대로 존재의 모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물은 ‘있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정갈한 그릇에 떠 담아 삶이 번거롭지 않은 아득한 뒤뜰, 장독대 위에나 나무 아래 있는 낮은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물을 떠 모시는 것으로도 삶의 온갖 일그러진 물음들을 고이 풀어 다듬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벽이 오면 우리네 어머니는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하면서 삶을 곱게 다듬어 갔다. 물은 그렇게 있었다. 삶이 구겨지고 사정이 급하고 초조하면 거기에서 온갖 사연을 아뢰는 비손을 하기도 했다. 악귀를 물리쳐 달라고 애원을 하기도 했고, 병든 자식을 위한 치병의 기원도 그렇게 맑은 처음의 물 앞에서 했다. 태초의 맑음 속에 담긴 신과의 교류가 거기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차라리 옳을는지 모른다. 천지신명이 거기 그 물에 모두 고여 있어 비손하는 간절함이 가서 닿지 못할 힘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사실 묘사일는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까닭으로 결손이라 여겨지는 일그러진 ①삶을 되살려지이다 하는 기원이 거기 있었고, 예측할 수 없는 귀한 혈육의 장래가 풍요롭기를 비는 기대가 또한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틀림없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또한 거기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물을 어떻게 또 어떤 모습으로 지니고 있는 것일까? 새벽이 열리는 시각에서부터 우리는 그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즉, 미명(未明)이라 불리는 그 시각에 우리네 조상들은, 그 한 어머님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었다. 그 시각을 우리는 존재가 비롯하는 때라고 불러도 좋다. 새벽은 그러한 때이다. 그 물은 그렇게 새벽을, ‘처음’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처음은 맑음 그대로의 ‘순수’이다. 새벽 샘물은 그 순수를 담고 있었다. 바위틈에서, 혹은 땅의 깊은 바닥에서, 휘저은 탁함이 아직 거기에는 없는 그 시각에 물은 그렇게 솟아 그렇게 맑다. 존재하는 처음 모습이 그럴 것임에 틀림없다. 온갖 것의 처음은 바로 그랬으리라. 새벽 샘물에 담긴 가장 맑음의 순수, 그것은 그대로 존재의 모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물은 ‘있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정갈한 그릇에 떠 담아 삶이 번거롭지 않은 아득한 뒤뜰, 장독대 위에나 나무 아래 있는 낮은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물을 떠 모시는 것으로도 삶의 온갖 일그러진 물음들을 고이 풀어 다듬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벽이 오면 우리네 어머니는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하면서 삶을 곱게 다듬어 갔다. 물은 그렇게 있었다. 삶이 구겨지고 사정이 급하고 초조하면 거기에서 온갖 사연을 아뢰는 비손을 하기도 했다. 악귀를 물리쳐 달라고 애원을 하기도 했고, 병든 자식을 위한 치병의 기원도 그렇게 맑은 처음의 물 앞에서 했다. 태초의 맑음 속에 담긴 신과의 교류가 거기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차라리 옳을는지 모른다. 천지신명이 거기 그 물에 모두 고여 있어 비손하는 간절함이 가서 닿지 못할 힘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사실 묘사일는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까닭으로 결손이라 여겨지는 일그러진 ①삶을 되살려지이다 하는 기원이 거기 있었고, 예측할 수 없는 귀한 혈육의 장래가 풍요롭기를 비는 기대가 또한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틀림없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또한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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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수도꼭지 끝의 내 목마름은
나뭇잎 끝의 멍한 물방울에 닿아 있다
水草(수초)들 털에 걸린 양떼구름을
집단으로 습격하는 물고기떼
살아 있는 것들의 더러움을
자기 몸으로 걸르고 걸러
내 목마름을 통과하는 강은
쓰라린 遠距離(원거리)를 흘러간다
수도꼭지 끝의 내 목마름은
나뭇잎 끝의 멍한 물방울에 닿아 있다
水草(수초)들 털에 걸린 양떼구름을
집단으로 습격하는 물고기떼
살아 있는 것들의 더러움을
자기 몸으로 걸르고 걸러
내 목마름을 통과하는 강은
쓰라린 遠距離(원거리)를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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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세례는 예수가 받았던 것처럼 요단강에 몸을 담그는 방식이 가장 좋은 것으로 믿어졌다. 초창기 세례는 옥외에서 행해졌다. 요단강까지 직접 가지 못할 경우에는 인근의 강, 호수, 바다 등에서 세례를 했다. 그러나 옥외에서 하는 세례는 불편했고 특히 기독교 박해기 때에는 안전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세례는 곧 실내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가정교회에서 했다. 당시 로마의 도무스에는 마당에 분수나 우물이 있었는데 이것이 요단강을 대신했다. 분수나 우물이 없을 경우에는 실내에 세례용 목욕탕을 별도로 만들었다. 세례를 통해 예수의 죽음을 공유한다는 상징성은 세례당의 기본성격을 무덤공간으로 정의하는 배경이 되었다. 세례당은 동시대 로마의 무덤 유형인 중앙집중형 구성을 갖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무덤 교회와 동일한 유형이 되었다. 또한 세례를 통해 예수의 부활을 공유한다는 상징성은 세례당에 팔각형이 특히 많이 쓰이는 배경이 되었다. 세례당은 팔각형 공간 윤곽 위에 돔으로 천장이 마감되는 구성을 표준형으로 가졌다. ‘8’이라는 숫자는 기독교에서 두 가지 상징성을 가진다. 하나는 천지창조가 끝나고 이 세상이 시작된 날이 여덟 번째 날이었다는 의미에서 재생을 상징한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 창조인 천지창조에 이은 두 번째의 새로운 창조의 의미로 부활을 상징한다.
세례는 예수가 받았던 것처럼 요단강에 몸을 담그는 방식이 가장 좋은 것으로 믿어졌다. 초창기 세례는 옥외에서 행해졌다. 요단강까지 직접 가지 못할 경우에는 인근의 강, 호수, 바다 등에서 세례를 했다. 그러나 옥외에서 하는 세례는 불편했고 특히 기독교 박해기 때에는 안전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세례는 곧 실내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가정교회에서 했다. 당시 로마의 도무스에는 마당에 분수나 우물이 있었는데 이것이 요단강을 대신했다. 분수나 우물이 없을 경우에는 실내에 세례용 목욕탕을 별도로 만들었다. 세례를 통해 예수의 죽음을 공유한다는 상징성은 세례당의 기본성격을 무덤공간으로 정의하는 배경이 되었다. 세례당은 동시대 로마의 무덤 유형인 중앙집중형 구성을 갖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무덤 교회와 동일한 유형이 되었다. 또한 세례를 통해 예수의 부활을 공유한다는 상징성은 세례당에 팔각형이 특히 많이 쓰이는 배경이 되었다. 세례당은 팔각형 공간 윤곽 위에 돔으로 천장이 마감되는 구성을 표준형으로 가졌다. ‘8’이라는 숫자는 기독교에서 두 가지 상징성을 가진다. 하나는 천지창조가 끝나고 이 세상이 시작된 날이 여덟 번째 날이었다는 의미에서 재생을 상징한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 창조인 천지창조에 이은 두 번째의 새로운 창조의 의미로 부활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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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7] 아래의 ‘성찰적 물 운동’의 관점에서 [가], [나], [다]의 ‘물’에 대한 인식을 활용하여 [라]의 ‘물-문화경관’ 개념을 비판하시오. [15점]
경제성장에 따라 여가 수요가 커지면서 수상 레저 산업이 발달하였으나, 근대적 삶의 편리함과 즐거움의 뒤에는 자연의 파괴라는 큰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 결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 보존을 깊이 생각하는 ‘성찰적 물 운동’이 관심을 끌게 되었다.
[라]
자연 속에서의 물이 진경산수화 속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한강변이 되거나,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물의 도시 베니스의 경관으로 인식되기까지는 인간의 손길을 거치는 과정, 즉 물의 인공적 처리라는 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그대로의 자연 풍광이지만, 거대한 운하를 파고 도시를 건설하며, 아름다운 다리를 놓고 거기에다 항상 물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공원에 분수를 조성하면 그 때는 이미 조용한 강물이 아닌, 그 장소 그 도시의 혼이 담긴, 그러니까 그 시대 그 민족의 독특한 문화적 경관이 형성되는 것이다. 또 우리는 그러한 경관을 문화경관이라고 말하고 단순한 자연의 풍치보다는 훨씬 더 값진 독자성이 있는 경관으로 간주한다.
세조의 재상 한명회가 노닐던 압구정 일대를 그린 겸제 정선의 진경산수화에는 당시의 남산, 삼각산, 압구정 포구의 뱃놀이 등, 강변에 노니는 백구와 간간이 보이는 정자와 별서들뿐이어서 그야말로 당시의 멋들어진 한강변의 경관을 여실히 보이고 있으니, 오늘날에 보는 거대한 아파트 군과 비교해 보면 어떻게 해서 그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 이토록 나쁘게 바뀌어버렸는가 하는, 자탄의 심정을 금할 수가 없을 만큼 경관이 변화했다.
현대는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가 생활의 중심이 되는 사회이다. 따라서 개인적 취향으로 자연을 끌어들이는 정원생활이란 의미가 없고, 오히려 집합적인 생활 방식으로서 물이 여러 사람에 의해 공유되는, 즉 공공의 의미가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 말하자면 연못보다는 하천경관으로, 자연풍치보다는 특이한 도시경관으로, 그리고 자연적인 형상보다는 계획과 인공적인 조작 결과로서 물의 경관이 더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도시의 경관이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된 것은 극히 최근에 와서의 일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도시에서의 하천은 하천개수나 치수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의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도시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도시경관 자원으로 보는 시각과는 거리가 있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 대도시의 하천에 대한 인식은 좀 더 시민이 접근하기 쉽고 쉴 수 있는, 명실상부한 시민공원으로 조성할 것인가로 변화되고 있다. 도시의 경관을 독자성이 있는 문화자산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물에 대한 의식, 나아가 경관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경관이라는 대상이 하나의 중요한 경관자원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될 때, 비로소 우리의 문화경관은 다른 나라와 비견되고 상대적인 독자성이 있음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 속에서의 물이 진경산수화 속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한강변이 되거나,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물의 도시 베니스의 경관으로 인식되기까지는 인간의 손길을 거치는 과정, 즉 물의 인공적 처리라는 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그대로의 자연 풍광이지만, 거대한 운하를 파고 도시를 건설하며, 아름다운 다리를 놓고 거기에다 항상 물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공원에 분수를 조성하면 그 때는 이미 조용한 강물이 아닌, 그 장소 그 도시의 혼이 담긴, 그러니까 그 시대 그 민족의 독특한 문화적 경관이 형성되는 것이다. 또 우리는 그러한 경관을 문화경관이라고 말하고 단순한 자연의 풍치보다는 훨씬 더 값진 독자성이 있는 경관으로 간주한다.
세조의 재상 한명회가 노닐던 압구정 일대를 그린 겸제 정선의 진경산수화에는 당시의 남산, 삼각산, 압구정 포구의 뱃놀이 등, 강변에 노니는 백구와 간간이 보이는 정자와 별서들뿐이어서 그야말로 당시의 멋들어진 한강변의 경관을 여실히 보이고 있으니, 오늘날에 보는 거대한 아파트 군과 비교해 보면 어떻게 해서 그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 이토록 나쁘게 바뀌어버렸는가 하는, 자탄의 심정을 금할 수가 없을 만큼 경관이 변화했다.
현대는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가 생활의 중심이 되는 사회이다. 따라서 개인적 취향으로 자연을 끌어들이는 정원생활이란 의미가 없고, 오히려 집합적인 생활 방식으로서 물이 여러 사람에 의해 공유되는, 즉 공공의 의미가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 말하자면 연못보다는 하천경관으로, 자연풍치보다는 특이한 도시경관으로, 그리고 자연적인 형상보다는 계획과 인공적인 조작 결과로서 물의 경관이 더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도시의 경관이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된 것은 극히 최근에 와서의 일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도시에서의 하천은 하천개수나 치수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의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도시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도시경관 자원으로 보는 시각과는 거리가 있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 대도시의 하천에 대한 인식은 좀 더 시민이 접근하기 쉽고 쉴 수 있는, 명실상부한 시민공원으로 조성할 것인가로 변화되고 있다. 도시의 경관을 독자성이 있는 문화자산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물에 대한 의식, 나아가 경관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경관이라는 대상이 하나의 중요한 경관자원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될 때, 비로소 우리의 문화경관은 다른 나라와 비견되고 상대적인 독자성이 있음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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