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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2009 모의논술(인문계) 해설

기출해설(논술형)/성균관대 2008/09/13 20:07

   <지시문 모음>
[문제 1]  아래 4개의 제시문들은 형벌의 의의와 목적에 관한 상이한 입장을 담고 있다. 이 제시문들을 두 입장으로 분류하고, 각 입장의 내용을 요약하시오.

[문제 2]  아래 <그림 1>과 <표 1>을 해석하고, 이를 활용하여 [문제 1]의 한 입장을 비판하시오.

[문제 3]  아래의 <표 2>를 해석하고, 그것이 [문제 1]의 입장들과 맺는 논리적 연관성을 밝히시오.

[문제 4]  [문제 1]의 제시문들을 활용하여 아래 <제시문 5>에 있는 물음에 답하시오.

   <지시문 해설>
   성균관대 논술문제는 항상 문제와 문제 사이에 추가적인 자료를 주어서, 문제들을 공간적으로 서로 떨어뜨려 놓습니다. 이렇게 배치하면, 네 개의 문제를 하나로 연결해서 보았을 때 쉽게 알 수 있는 핵심적인 논점이 잘 보이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성균관대 논술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이처럼 [문제]들의 지시문을 연달아 살펴보면서 전체 주제와 각 답안의 역할을 잘 이해한 후에 구체적인 제시문과 기타 자료의 분석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제 이번 모의논술의 [문제]별 지시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문제 1]의 지시문은 4개의 제시문들이 형벌의 의의*(의미)와 목적에 관한 두 입장들을 담고 있다는 정보를 주고 있는데, 2:2인지, 1:3인지는 알려주지 않네요. *의의란, '뜻', '의미'와 비슷한 말입니다. 그 정체가 뭐냐는 것이고, 따라서 형벌의 의의는 '형벌은 이러이러한 개념(존재)이다'와 같은 형태로 진술하게 됩니다. 지시문에서 '의의와 목적'이라고 둘을 구분해주고 있으므로, 목적을 제외한 의미를 생각해야죠.
   [문제 2]의 지시문은 자료해석을 활용하여 [문제 1]의 한 입장을 비판하랍니다.  여기서는 여기 주어진 자료해석을 통해 비판될 수 있도록 [문제 1]의 두 입장이 정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합니다.
   [문제 3]의 지시문은 또 다른 자료해석 결과가 [문제 1]의 입장들과 어떤 논리적 연관성을 갖느냐고 묻고 있는데, 논리적 연관성이 무슨 말이냐 싶은 학생들이 있을 겁니다. 논리적 연관성이라면,  첫째 주장-근거의 관계, 둘째 하나에서 다른 하나가 당연히 도출되는 관계, 셋째 양립할 수 없는 관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자료해석이 입장(주장)들과 맺을 수 있는 관계는 첫째 관계겠죠? 따라서, 이 자료해석 결과에 부합하는 주장과 그렇지 않은 주장이 있는지, 혹은 공통전제인지, 혹은 두 주장 모두 이 자료해석 결과를 설명하지 못하는지를 알아내어 답안에 밝혀주어야 합니다.
   [문제 4]의 지시문은 앞선 4개의 제시문들을 활용하여(두 입장으로 정리된 상태죠?) <제시문 5>의 물음에 답하라네요. 그럼 <제시문 5>의 물음이 뭔지 확정을 해야되는데, 이때 앞선 두 입장이 각각 답을 제시할 수 있는 물음으로 정리해야만 합니다.이제 지시사항을 이어붙여봅니다. [문제 1]에서는 논제 전체의 핵심 쟁점에 대해 두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 [문제 2]와 [문제 3]에서는 제시된 자료를 분석하여 두 입장을 비판/옹호하기 위한 논거를 추출하고 검토한 다음, [문제 4]에서는 두 입장이 어떤 특정한 문제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순서로 답한 내용을 연결하면 하나의 논점에 대한 훌륭한 논술문이 되겠죠? 

   이와 관련하여 주의할 것은, [문제 1]에 대한 답안에서 정리한 두 입장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안에 계속 사용된다는 겁니다. [문제 1]에 대한 답안이 두리뭉실하거나 잘못 작성되면, 전체 답안이 방향을 읽고 헤매게 되는 거죠. 따라서, [문제 1]에 대한 답안은, 다른 문제들에 대한 가능한 답안과 맞아 떨어진다는 확신이 든 다음에 작성해야 합니다. 이상의 순서에 따라 작업을 한다면 대단히 짜임새 있고 효율적인 답안을 낼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주어진 [문제]의 순서를 따라가면서 어떤 입장이 대립하고 있으며,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하는가 알아봅니다.



[문제 1]  아래 4개의 제시문들은 형벌의 의의와 목적에 관한 상이한 입장을 담고 있다. 이 제시문들을 두 입장으로 분류하고, 각 입장의 내용을 요약하시오.

<제시문 1>
   법관의 형벌은 결코 범죄자 자신을 위해서건 시민사회를 위해서건 어떤 다른 ①선(善)을 조장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일 수 없다. 도리어 그것은 언제나 범죄자가 ②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그에게 과하여지는 것이어야 한다. 형벌은 일종의 정언명령*이다. 공리론이 형벌관념 속에 뱀처럼 기어들어와 ③형벌이 약속해 줄 수 있는 어떤 유익을 통해 이 정언명령을 형벌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마치 ‘전체 백성이 죽는 것보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한 바리새인의 말에 따라 그 정도를 완화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경계하고 방어할지어다! 왜냐하면 정의가 몰락한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이 땅 위에 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④시민사회가 그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 해체된다 하더라도(예컨대 한 섬에 사는 백성들이 그 섬을 해체하고 다른 세상으로 흩어지기를 결의한 경우처럼) 감옥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사람의 살인자만은 미리 처형하고 나와야 한다. 이로써 모든 사람은 자신의 ⑤범행이 어떤 값을 치루어야 할까를 경험하게 되고, 이 처형을 하지 않음으로써 피흘린 죄가 전체 백성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처형을 하지 않은 백성도 정의에 대한 공공연한 침해에의 동참자들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언명령: 무조건적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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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 2>
   ①국가의 목적은 모든 시민 상호간의 자유보장, 다시 말해 각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완전하게 행사할 수 있으며, 권리에 대한 침해로부터 안전한 상태를 달성하는 데 있다. 따라서 모든 권리 침해는 시민 공동체의 본질적 목적과 모순되며, 그 때문에 국가 내에서 어떠한 권리 침해도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은 그 목적에 따른 필연적인 요청이다. 그 결과 국가의 임무는 ②그러한 침해를 완전히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내는 데 있다. <중략>
  
국가의 인간의 그러한 욕구 능력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야만 하며, 그로써 시민으로 하여금 ③심리적으로 어떤 범법행위도 저지르지 않도록 결정하게 해야 한다. ....④인간은 자신이 선호하는 일정한 쾌락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반면에 자신의 본능에 반하는 것으로서의 불쾌나 고통으로부터는 달아나려는 존재이다. 그 때문에 인간은 더 큰 쾌락을 얻을 수 있을 때에만 상대적으로 경미한 쾌락을 거부하며, 그 큰 고통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약한 불쾌는 감수한다......따라서 일정한 행위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겪게 될 불쾌보다 그 욕구를 충족시킬 때, 즉 ⑤법을 위반했을 때 뒤따르는 해악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점을 모든 시민들이 확실히 인식한다면, 범법 행위는 저질러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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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 3>
  
영국의 경우, 특별히 가증스럽다고 여겨지는 범죄가 사람에 의해 저질러졌을 때는 태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 이를테면 여자가 부도덕한 방법으로 벌어오는 소득으로 살아가거나 여자를 폭행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태형을 명하는 판사들은 판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뚜렷한 만족감을 과시한다. 그들은 그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잔인한 본능의 배출일 뿐이다.
   최근에 런던 《타임스 The Times》지에 한 성직자가 보내온 편지가 실렸는데, 건강에 심각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을 때는 교도소 의사의 소견에 따라 이 형벌을 가할 수 없다는 규정에 대해 몹시 유감스러워하는 내용이었다. 이 훌륭한 기독교 목사는 자신이 ‘피에 굶주렸거나 특별히 앙심이 싶은’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공언한 다음 이렇게 주장한다. “타인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본인의 건강 상태가 어떠하든 자기행위의 결과를 철저히 감수해야 한다.
  
범죄에 대해 분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가혹한 처벌을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벌을 가하는 사람들에게 쾌감을 주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고 범죄를 막는 것이 목적이라면 보다 과학적인 태도가 바람직하다. 모든 폭력과 잔인성은 그 답례로 다시 폭력과 잔인성을 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반드시 직접 보복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가혹하고 잔인한 형태로 말이다. 맹목적인 분노 상태에서는 이 어려운 문제를 바람직하게 다룰 수 없다. 육체적 형벌을 지지하는 모든 주장들이 과학적 이해가 아니라 분노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인간이 보다 과학적으로 변하면 그런 야만적인 관행은 더 이상 용인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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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 4>
   그들이 앗아간 것은 피해자의 목숨만이 아니다. 피해자는 탁월한 과학자일 수도 있었다. 피해자는 천부적인 예술가일 수도 있었다. 피해자는 위대한 정치인일 수도 있었다. 피해자는 어쨌든 누군가는 될 수 있었다. 피해자에게는 인생이 있었을 테니까. 그 가능성을 빼앗긴 것이다. 피해자는 기뻐하고 슬퍼하고 또 사랑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빼앗긴 것은 바로 삶이다. 피해자만이 삶을 빼앗긴 것은 아니다. 유족들은 그날의 피해를 막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살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잘해주지 못한 회한에서 벗어날 수 없다. 피해자의 친지들, 친구들, 동료들 또한 깊은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된다. 어디 그뿐이랴. 사회는 어떤가.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서로를 불신하게 된다. 함부로 다니지도 못한다. 사회 전체에 평화도 믿음도 자유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범죄는 이렇게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야만이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로 ②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우리들이 과연 그들과 이 땅에서 한 하늘을 이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낸 세금으로 그들이 세 끼 밥을 먹고 잠을 잘 곳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참아낼 수 있을까. 그들이 언젠가는 다시 사회로 돌아와 우리와 같이 거리를 활보하고 우리와 마주칠 수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있을까. 또 언젠가는 그들이 비슷한 범죄를 다시 저지를 수 있고 그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들을 우리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지 않고도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을까. 그들의 존재 자체를 지우지 않고서 그들을 기억 밖으로 쫓아버릴 수 있을까.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 그들이 자신의 생명 말고 무엇으로 속죄할 수 있을까. 죽였으니 죽어야 하고, 죽어야 하니 죽이는 것이 불가피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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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2]  아래 <그림 1>과 <표 1>을 해석하고, 이를 활용하여 [문제 1]의 한 입장을 비판하시오.

  <그림 1> 미국에서 살인률이 가장 높은 세 도시와 가장 낮은 세 지역(2004년)

※ 메릴랜드주와 캘리포니아주는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미시간주, 하와이주, 뉴욕주와 워싱턴
     D.C.는
사형제도를 폐지하였음.

  <표 1> 미국의 주(州)별 범죄율(2004)

주(지역)

인구(만명)

강력범죄율*

살인률**

사형제 여부

워싱턴 D.C.

55

1,371

35.8

없음

루이지애나

452

639

12.7

있음

메인

132

104

1.4

없음

노스다코타

63

79

1.4

없음

*   강력범죄율은 인구 10만 명당 살인, 강간, 강도 및 폭행 건수를 합한 것임
** 인구 10만 명당 살인 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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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3] 아래의 <표 2>를 해석하고, 그것이 [문제 1]의 입장들과 맺는 논리적 연관성을 밝히시오.

  <표 2> 싱가폴의 태형 처벌 건수와 범죄율

연도

태형 처벌 건수

살인률*

강간률*

강도율*

폭행률*

1988

616

2.1

1.3

64

21

1991

1,422

1.8

0.7

51

17

* 인구 10만 명당 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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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4].  [문제 1]의 제시문들을 활용하여 아래 <제시문 5>에 있는 물음에 답하시오.

<제시문 5>
   다음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내용은 프랑스 왕이 되려는 음모를 꾸몄다 하여 1757년 사형에 처해진 한 사람의 최후의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 불행한 사람은 그의 가슴과 팔과 다리의 살점을 떼어내고 그 상처위에 끓는 기름과 밀랍과 유황을 끼얹는 처벌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나서 그의 몸은 네 마리의 말에 의해서 네 조각으로 찢기고, 그 다음에는 불태워졌다. 이 사람은 자신의 몸에서 마지막 관절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살아 있었다고 한다.
  
근대 이전의 세계에서는 이와 같은 처벌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처형은 종종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행해지기도 하였는데, 이와 같은 관행은 몇몇 나라에서는 18세기까지도 존재하였다. 사형을 집행하는 형리들은 요즘으로 치면 ①영화배우와도 같은 인기를 누렸다.
   ②
오늘날에는 그러한 처벌방식은 전혀 호응을 받지 못한다. 설사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저질렀더라도 고문을 받거나 험한 방법으로 죽여 버리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의 처벌 체계는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감옥에 가두는 것에 기초하고 있으며, 많은 서구 국가들에서 사형제도는 이미 없어졌다, 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왜 과거의 좀더 폭력적인 처벌 형태가 없어지고 수감이라는 방법으로 대치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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