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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

키워드와 테마 2008/08/26 20:37

오늘 강의의 목표는 이기주의입니다. 이기주의를 분석하면 이익과 자아라는 구성요소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기주의를 이야기하려면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야 하고, 그 다음 그것을 귀속시킬 자아의 형태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기서는 이익(利益, Interest)의 개념으로 통합해서 다시 분석해보겠습니다. 꽤 길지만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면서 읽어가시고, 논의를 펼쳐가는 동안 사용하는 기법들을 주의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이익을 정의해보죠. 이익을 이야기하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그 이익이 귀속될 주체가 정해져야하고, 둘은 그게 이익인지 아닌지, 얼마나 이익인지 판단하기 위한 가치평가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뭔가 주체에게 손해를 끼치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가치여야겠지요? 그럼 이익을 정의해봅니다. 이익이란, 어떤 주체에게 귀속되는 일정한 긍정적 가치를 일컫는 말입니다. 아직 추상적이군요. 그렇다면 이번엔 구분을 해봅니다. 먼저 주체에 따라서 구분해보면, 개인적 이익, 집단적 이익, 말순이의 이익, 쇠돌이네 식구의 이익, 노동조합의 이익  등 주체범주를 묶는 방법의 수만큼 구분할 수 있네요. 또, 가치기준에 따라 구분해봅니다. 경제적이익, 정치적이익, 유형/무형적 이익, 계산가능한 이익과 불가능한 이익, 현재/장래의 이익 등, 이것도 가치를 묶는 방법 만큼이나 많군요. 결국 이익의 종류는 그 귀속주체와 가치기준을 설정하는 방법에 따라 하위개념으로 구체화되는데, 그 수가 무한정 많습니다. 그러나 의미 있는 논의를 계속해나가기 위해서는 하위 개념의 수를 줄여야 하는데요, 주체의 범주를 단순화/추상화하는 방법과 이익의 종류를 단순화/추상화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익주체를 개인과 집단으로만 나누어서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익의 종류가 무엇이든, 다시 말해서 경제적 이익이 아닌 이익들에 대해서도 성립하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기주의의 의미

이익의 주체에 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근본적 쟁점이 나옵니다. 먼저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대비시켜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행동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 반대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인간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기적 인간관의 답은 후자입니다. 즉,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이기적 인간관에서는 타인의 이익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답은 관심 없음입니다. 타인의 이익을 고려해서 자신의 이익을 자제하는 게 어떻게 이기심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이기주의 vs. 이타주의(본성 vs. 양육)

이기주의에 반대되는 개념도 한번 볼까요? 이타주의입니다. 종교적으로 이타적 인간관을 주장하는 교리들이 있습니다. 종교들은 이기심을 버리고 자신과 타인, 인간과 자연을 차별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곤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가르침은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구체적인 행위지침으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만약 자신의 이익을 버리지 않고도(이기적 원칙) 타인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상황(이타적 원칙)이라면 타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게 이기심에 반하는 행동이 아니거든요. 원래 자기 이익을 추구할 상황이 아니니 포기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거지요. 따라서 이타주의가 의미를 가지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소유권제도이고, 또 하나는  이기적 개체들 간의 이익충돌입니다. 잠시 주변을 둘러봅시다. 이익충돌 상황에서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인간이나 사회가 보편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거의 없지요. 이 상황에 대해서도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원래 배타적 권리 개념이나 이기심을 "유전적으로" 갖고 태어난다는 입장과, "문화적으로" 교육받은 결과라는 겁니다. 이기주의 체제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기주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는 거죠. 물론 이타주의가 우리의 천성(본성)이라고 생각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본래 이타적인 존재일까요? 아니면 이기적인 존재일까요?

인간 본성에 관한 논의

이기심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이기적 인간관은, 아시다시피 개인주의, 자유주의, 다원주의, 자본주의의 근본을 이루는 인간관입니다. 또 이것은 합리적 이기심을 의미합니다. 자신에게 무엇이 궁극적으로 이익이 되는가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실현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과연 개인이 이기심을 합리성의 기준으로 분별력있게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드신다면, 여러분은 벌써 근거 없이 믿지 않는다는 합리적 의심을 실천하고 계신 겁니다. 이 문제는 이기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의 기본전제에 해당하므로, 우리의 의심은 자유주의와 다원주의가 과연 옳은 사상이냐는 의심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개인이 합리적이라고 해서 개인의 집합이 합리적이라고 바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결합의 오류가 되지요. 인간이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이고 똑똑하지만 집단이 되면 어리석게 된다면, 집단의 단위에서 의사를 결정할 때 그 집단적 의사가 불합리하고 어리석다는 의미가 되고, 이것은 자유주의와 다원주의가 정치사상으로서 낙제점이라는 뜻이 됩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다원주의가 부정되어야 하는 거죠. 그렇다면 결국 현명한 소수에 의한 독재정치나 일방적인 종교적 가르침에 의문을 갖지 말고(의문을 가지면 화형당함) 따를 것을 요구하게 되겠죠. 이 문제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고 싶으시면, 한번 일반적이지 않은 쪽으로 입장을 세워보시길 권합니다. 대중이 어리석다는 입장에 서면, 당연하게 말하고 주장하던 자유주의, 민주주의, 다원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게 되는지에 대해 특히 집중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이처럼 인간의 본질에 관한 논의는 모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기본을 이룰 만큼 중요한데요,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기 위해서 흔히 사용되는 논점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유전적 결정론 vs. 후천적 학습의 논점이고, 또 하나는 이기주의 vs. 이타주의의 두 논점입니다. 가능한 인간본성에 대한 주장은 몇 가지입니까? 네 가지죠? 여러분은 어떤 인간관을 취하십니까? 그리고 그런 인간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구성해야 할까요?

만약 이기적 본성을 전제하게 되면, 그에 따라 다음과 같은 정치적 주장들이 이어집니다. 어리석은 이기주의자들이 이기적 투쟁으로 사회와 자기 자신마저 파괴하지 않도록 조정역할을 할 권력을 필요성을 주장하는 입장, 혹은 그런 이기적 원칙은 자연스럽게 타협점을 찾게 되므로 인위적인 조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그것입니다. 반면에 이기적인 본성을 부정하게 되면, 이기심의 근원 혹은 전제조건이 되는 소유권제도와 경쟁의 문화를 파괴함으로써 평화를 회복하자는 입장들이 따라옵니다(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 참고). 중요한 것은 이런 입장들이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어떻게 가정하고 출발한 것인지를 간파하는 힘입니다.


이익 충돌의 해결

그런데, 우리가 교과서에서 읽는 "지나친 이기심"이라는 말은 묘한 의미를 가집니다. 왜냐면 이익을 개인에게 귀속시키지 않고 공유상태로 내버려두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기심은 이타심과 대립을 이룰 뿐, 그 중간지대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즉, '오직 나만의 것'이라는 의미인 소유권(지배권) 개념을 전제하는 한, 이기심이 지나치다는 말은 곧 공유상태를 유지하거나 타인에게 양보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기적 태도가 아닙니다. 결국 이기적 인간을 기본 전제하고 있는 사회사상이 지나친 이기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이기심의 발현을 억제한다면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결국 우리 머릿속에 세뇌된 교과서의 윤리적 지침은 이기주의의 윤리성과 이타주의의 윤리성을 모순적으로 함께 담고 있는 겁니다.

분명히 모순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교과서를 쓰는 이유는, 이기심만 발현되어 공적(公的) 이익을 돌보는 자가 없는 상황이 결국 전체와 개인의 파탄을 유발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공유지의 비극이나 죄수의 딜레마에 잘 나타납니다. 이런 모델링이 옳다고 인정한다면, 결국 이기심의 무한한 발현은 아무도 원하지 않겠군요. 그러면 이제 의문은 누가, 얼마나, 어떻게 양보할 것인가의 문제로 자리를 옮겨 갑니다. 해법은 두 가지입니다. 권력과 타협이 그것입니다.

  • 권력([주제강의/교양키워드 100] -"권력")
    먼저 '어떻게'와 관련해서, 충돌하는 이익들이 어떻게 자제되어야 할 것인가를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판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번엔 과연 객관적인 판정기준이 있느냐( [주제강의/교양키워드 100] - 『절대성과 상대성』), 있다면 과연 당사자가 그 기준에 미리 동의(주제강의/교양키워드 100] - "동의")하고 있느냐가 문제됩니다.


     
  • 타협([주제강의/교양키워드 100] -"합리적 의사소통")
    이기심을 제한하는 방법에는 객관적 and/or 권력적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발적인 타협이 있죠. 이 타협이라는 말도 교과서를 통해서, 무비판적으로 우리 머릿속에 긍정적인 가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럼 비판을 해야죠. 비판은 대상을 자세히 잘라(분석) 질문을 던지면서 모호한 의미를 분명히 하고, 밝혀지지 않은 문제가 무엇인가를 확정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그럼 타협 개념을 분석해볼까요? 타협은 자발성, 만장일치를 속성으로 합니다. 자발성은 당사자가 스스로 이기심을 자제한다는 거고, 만장일치는 당사자들이 모두 결론을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여기서 모든 당사자를 설득할 수 있는 설득력의 실체도 궁금해집니다. 타협이 어떤 기준에 '따라,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가에 관해서는 따로 다루겠습니다.

권력적 판정과 타협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방법이지만 우리는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또 교과서는 타협을 먼저 모색해야 한다고 하고, 재판의 방법을 정하고 있는 민사소송법도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재판중에라도 타협(화해)해버리면 판사가 판결 자체를 할 수가 없지요. 왜 그런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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