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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2008정시(인문) <문제2> 해설 및 첨삭

기출해설(논술형)/서강대 2008/09/03 00:32


<문제 2: 60%, 1,200~1,400자>
제시문 [가], [나], [다], [라]는 인식의 방식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서로 공통된 주장을 하는 인용문 두 쌍을 명시하고, 각 쌍의 인용문들이 어떤 의미에서 공통된 주장을 담고 있는지 서술하시오. 그리고 이 두 개의 주장이 서로 어떻게 양립가능한지를 설명하시오.

<지시문 해설>
지시문이 조금 복잡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복잡해보이는 게 오히려 쉬울 수도 있으니깐 겁먹지 마시고요.

먼저 지시문이 제공하는 힌트부터 볼까요? 제시문들은 전부 '인식의 방식'에 대해서 쓰고 있고, 각각 인식의 방식에 대한 주장을 같이 하는 두 개의 글이 있으며(결국 두 개씩 묶으란 말), 두 주장이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모순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라는 거네요. 정리하면, 중심 지시는 (인식의 방식에 대한) 두 개의 주장이 양립가능하다는 걸 설명하라는 거고, 조건 지시는 제시문 두 개씩 공통주장으로 묶고 묶은 이유를 밝히라는 거군요. 간단하죠? ^^

그럼 인식의 방식에 대한 두 주장을 찾아내서 공통주장으로(하나의 동일한 문장으로) 엮어내는 일은 제시문 분석을 통해 얻어내야겠고요, 그 다음엔 그 두 가지 주장이 언듯 모순적인 관계로 보인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립할 수 있다는 점은 추론해내야겠군요. 음... 이 문제는 제시문을 가공하고 추론을 통해 논증하는 과정이 상당히 어렵겠는데요.

그럼 일단 제시문들이 인식의 방식에 대해 어떤 주장들을 하고 있는지 보러 갑시다.



[가]
“그리고 예수는 무슨 말을 했지?” 타오르(*)가 데마스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배부를 것이다’고 말했어요.” 데마스가 답했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옳은 일을 한 이후로 그토록 목말라 괴로워했던 타오르에게는 더 이상 절실하게 와 닿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그는 데마스에게 자기의 모든 삶이 들어 있는 그 몇 마디 말들을 되풀이해서 또 해달라고 애원했다. (…중략…) 그런데 바로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오로지 타오르만이 증인이 될 수 있는 아주 비밀스럽고 조그만 그런 기적이! 그의 덧난 두 눈에서, 곪은 눈꺼풀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려 그의 입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는 그 눈물을 맛보았다. 그것은 단물, 그가 30년이 넘도록 마셔 왔던 소금물이 아닌 최초의 물이었다.


* 이 소설의 주인공 타오르는 예수를 만나려 했던 네 번째 동방박사다. 예수를 만나러 가던 중 곤경에 빠진 타인을 대신해서 소금 광산에서 30년 이상 죄수로서 노동하게 된다. 늘 소금기 섞인 물만 마시며 연명하던 가운데, 새로 들어온 죄수 데마스로부터 예수의 설교 내용을 듣게 된다.

[가] 해설
대뜸 읽어서는 이 글이 '인식의 방식'에 대한 주장을 알아내기는 커녕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인지조차 알 수 없네요. 그럼 다른 제시문들을 잘 이해해야겠네요.내용을 기억하고 다음 제시문으로 넘어갑니다.



[나]
주관적으로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충분한 견해를 지식이라 일컫는다. (…중략…) 지식이란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지성(common understanding)을 뛰어넘어야 하며, 철학자만이 그 지식을 밝혀낼 수 있다고 여러분들은 생각하는 것인가? (…중략…) 자연은 모든 이들에게 차별 없이 부여한 것에 관하여, 이를 편파적으로 분배했다는 죄명을 쓰지 않는다. 또 최고의 철학은자연이 사람들의 가장 공통적인 지성에 수여했던 바 그 이상으로 가르침을 줄 수는 없다.

[나] 해설
주관적인 것은 지식이 아니고, 객관적이어야 지식이랍니다. (여기서 잠깐! 주관적인 것은 개별적인 인식의 주체(개인)별로 형성하는 그 무엇을 말하죠? 객관적인 것은 모두에게 동일해서 타인들도 똑같이 받아들이는 거구요.) 그런데 지식 가운데 공통적인 지성을 넘어 철학자만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이 따로 있겠냐고 묻는군요. 설의법이네요. 다음 두 문장이 또 다른 힌트이자 부연이네요. 자연은 공평하므로, 최고의 철학조차 공통의 지성(자연이 모든 이에게 공통적으로 수여한 것)을 넘어서 우월적인 지식을 가르칠(얻을) 수 없다는 뜻이네요.
요약하면? "지식(에 대한 인식)은 객관적인 것이며, 모든 사람은 동일한 (지식에 대한)인식능력을 가졌다." 이렇게 되는군요. 어렵네요... ㅠㅠ



[다]
양식(良識)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누구나 그것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상으로 양식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것은 잘 판단하고, 참된 것을 거짓된 것으로부터 가려내는 능력, 바로 양식 또는 이성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나면서부터 평등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다] 해설
메모에 쓴 내용을 조금 바꾸면, 양식이란 건전한 인식입니다. 마지막 문장에서는 '양식 또는 이성이라 일컬어지는'이라고 하고 있으므로, 양식과 이성을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그 문장에서 보면, 이성(양식)은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판단력이라는군요. 중간에 논증은 형편 없지만, 요컨대, 참과 거짓을 인식하는 판단력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존재한답니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나]와 [다]가 '인식의 방식'에 대해 공통적으로 뭐라고 주장합니까? 모든 사람의 인식의 능력이 동일하다고요? 그럼 '인식의 방식'에 대한 공통주장이 아니잖아요. 이렇게 하면 될까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동일한 인식의 방식을 갖고 태어난다. [나]의 단어를 차용하면? "선천적/객관적 인식방법" 내지 "인식방법의 보편성(모두가 동일함)" 정도가 되겠군요. 키워드의 최종 선택은 나머지 제시문을 읽고 나서 합시다. 헥헥...



[라]
만일 우리가 다른 길들을 통해서 다른 진리들에 이를 수 없었다면, 우리는 지성의 진리로부터 추상적인 가능성 이외에 별로 많은 것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어떤 사람이 어떻게 배우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배우든지 간에, 그것은 객관적인 내용의 흡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상 자기의 시간을 잃어가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어떻게 한 초등학생이 단번에 라틴어에 숙달되는지 어떤 기호들(징표들)이 (사랑이나 고백하기조차 창피한 욕구를 통해) 그의 배움에 도움을 주는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선생이나 부모가 준 사전을 통해서는 전혀 배울 수가 없다. (…중략…) “이 미지의 기호들로 된 내적인 책을 읽는 데에는 그 누구도 어떤 모범을 제시해서 나를 도와줄 수 없었다. 이 독해는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협력조차 제공할 수 없는 창조 행위였다.”

[라]  해설과 답안작성 도우미
위에서 [나]와 [다]가 공통적으로 인식방법의 선천성/객관성/보편성을 주장하고 있다고 정리했습니다. 그럼 이제 [라]와 [가]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인식방법의 특징은 "언듯 보기에 모순적인" 것이겠군요. 이런 힌트를 가지고 [라]를 먼저 분석해서 정리한 다음, [가]도 동일한 인식방법을 주장하고 있는지 검증하면 됩니다.

[라]는 지식의 습득이 객관적인 인식을 흡수하는 과정이 아니랍니다. 예컨대, 독해란 기호로 표현된 타인의 인식을 받아들이는(인식하는) 과정인데, 그 과정이 새로운 창조행위라고 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인식결과의 반복적 전달(복제)이 아니라는 겁니다. 요컨대, 인식이란 (심지어 남의 인식을 인식하는 경우에서까지) 철저하게 주관적인 과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네요.

이제 [가]를 읽어서 인식의 주관적/창조적 성질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확인하러 갈 차례이군요. 가서 보시죠. 그렇죠? 마치 독서와도 같이, 타인의 인식(예수의 인식, 지혜)을 내가 이해하는 과정은 법칙적으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기적적인 이벤트고, 그런 기적적인 깨달음은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는(자신만이 증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하고 비밀스런 사건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라]와 같은 내용 맞죠? ^^



<예시답안> - 답안을 작성해보고 싶은 사람은 절대로 예시답안을 먼저 보지 마세요.
   (가)는 타오르가 예수의 설교를 듣고 여태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던눈물이라는 기적을 깨닫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진리를 깨닫는 방식을 말하고 있다.(나)는 지식이 누구에게나 부여된 것으로 ②어떤 철학도 자연이 부여한 공통적인 지성 이상의 가르침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다)는 양식,즉 좋은 앎이란 ③나면서부터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라)는 ④진리를 깨닫는 과정이 사람마다 모두 다름을 말하며 이러한 진리 탐구 과정을 창조 행위라고 일컫는다.
  
각 제시문을 공통된 주장으로 묶어보면 (가)와 (라)가 그 주장을 같이 하고,(나)와 (다)가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⑤(가)는 예수의 추상적인 말에서 자기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인식이라고 말하고 있다.(라)도 (가)와 비슷한 견해이다.(라)에서도 진리로의 과정,즉 인식의 과정이 개개인마다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간단한 예로 암기 시험에서 학생마다 외우는 방법이 다른 것을 들 수 있다.두 제시문의 주장을 압축하자면 ‘인식의 개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식을 자연이 만인에게 똑같이 부여한 것으로 본다.또 (다)는 이성,판단 능력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부여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두 제시문 모두 진리에 대한 인식이 사람마다 같을 수밖에 없음을 피력하고 있다.(나)와 (다)의 주장의 공통점은 ⑥‘인식의 공통성’혹은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가)와 (라)의 주장은 인식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주관적이라는 데 중점을 둔다.반면에 (나)와 (다)는 인식이 공통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두 주장은 대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두 주장은 대립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먼저 (가)와 (라)가 말하는 주관적 인식은 개개인마다 다른 것으로,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깨우쳐 가는 것이다.(나)와 (다)는 공통적인 지식이란 객관적인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본다. ⑦이 때 두 가지 다른 관점 중 하나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보자.자신만의 진리가 없이 누구나가 인식하는 지식으로만 채워진 삶은 의미 없어 보인다.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의 세계 안에서 개개인은 스스로 깨닫고 자신만이 아는 주관적인 인식을 가져야 진정한 자신의 존재 의미를 구할 수 있다.두 가지 다른 인식의 관점은 무조건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두 요소 모두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해 주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첨삭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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