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피동, 주동/사동
systax & vocabulary 2008/08/31 07:11
능동/피동의 구별, 주동/사동의 구별에 대해 혹시 헛갈리는 분을 위한 포스트인데, 잡설이 붙었네요.
1. 능동(能動)과 피동(被動)
능동: 네가 장막을 걷었니?(걷다)
피동: 거센 바람에 구름이 걷힐까?(걷히다)
능(能)은 그 자체로 주체의 행위를 뜻하고 피(被)는 '저쪽'이라는 뜻*인데, 피동이라면 '저쪽이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능동은 그 동사의 주어(네)가 동작(걷음)을 직접 한다는 뜻이고, 피동은 동사의 주체(구름)가 아니라 다른 녀석(바람)이 동사의 동작(걷음)을 주체(구름)에게 한다는 뜻입니다.
2. 주동(主動)과 사동(使動)
주동: 네가 장막을 걷었니?(걷다)
사동: (제가) 반장에게 시험지 걷힐까요?(걷히다)
주동은 능동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되고, 사동의 사(使)는 '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동은 동사의 주체(나)가 동작(걷음)을 ~(반장)에게(주어가 아니고 부사어입니다) 시킨다는 뜻입니다. 전부 같은 동사로 예문을 만들려니 사동사 예문이 조금 낯설겠지만, 맞는 표현입니다.
3. 피동과 사동의 분별
여기서 중요한 것! 사동사를 쓸 때의 의미와 피동사를 쓸 때의 의미가 이렇게 다른데도 불구하고, 우리 말이 사동접미사와 피동접미사를 구별하지 않고 섞어서 쓰기 때문에 피동/사동이 형태만으로 분별이 안 됩니다. 게다가 하나의 동사에서 피동/사동이 서로 다른 접미사를 가져버리면 맞춤법 문제까지 발생합니다. 여기가 시험문제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런 맞춤법 문제를 틀리지 않으려면, 문장내에서 주어가 동작을 하느냐, 당하느냐, 시키느냐를 생각해서 능동/피동/사동을 의미상으로 구별하는 방법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이 얘기를 하려고 위에서 장황하게 설명했는데요, 역시 한자어를 알면 이런 설명이 오히려 거추장스럽죠? ^^
예를 하나 듭니다. "부딪다"는 '마주 닿다, 마주 대다, 마주 닥뜨리다'의 뜻으로 쓰이는 움직씨(동사)입니다. "부딪히다"는 이 말의 피동형으로서 '부딪음을 당하다'의 뜻이고, "부딪치다"는 "부딪다"의 힘줌말입니다. 둘다 맞는 말인데, 헛갈리지 않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문제로 풀어볼까요?
ㄱ. 공사장에서 떨어진 나무에 머리를 부딪혔다.
ㄴ. 그 배우는 지금까지 별의별 질시와 모함에 부딪혀 왔다.
ㄷ. 저기가 그들의 차가 부딪힌 곳이다.
ㄹ. 마침내 할인 매장에서 그녀와 맞부딪쳤다.
3. 자동(自動)과 타동(他動)
참고로, 타동사의 타(他)는 '남'이라는 뜻인데, 자기가 아닌 모든 대상을 가리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동사는 주체가 동작을 하는 데서 끝나고, 타동은 주체가 한 동작이 다른 대상(他, 目的)에 전해지는 게 다릅니다. 즉, 목적어를 필요로 하느냐, 또는 목적어를 둘 수 있느냐에서 다르죠.
4. 영어공부가 어려운 이유
우리 말은 동사의 파생형태 구분을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하는데요, 영문법 배울 때와 비교해보세요. 영어(유럽어) 쓰는 사람들도 이런 세 가지 표현을 다 하는데요, 우리 말과 체제가 많이 다릅니다. 알타이어와 유럽어는 동사체제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어(유럽어)를 공부하는 게 힘든 건 당연한 겁니다.
동사체계가 어떻게 다른지 대략이라도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지고 능력을 벗어나므로 생략. 다만,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싶다면 동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도록 연습하세요. 그게 가장 어려우니까요. 그래서인지, 영어공부는 동사부터 해야 한다는 분들이 요즘 대세더군요. 근데 그런 주장이 별 의미가 없는데, 우리가 배우는 영문법의 2/3가 동사입니다. 시제, 법, 태 등...나머지는 명사(+관사)와 분사죠. 형용사 부사는 별로 공부할 게 없고. ^^
물론, 거꾸로 유럽어를 쓰는 사람이 한국/일본어 배울 때도 마찬가지로 동사가 고역이죠. 사실 저 사람들이 알타이계 언어(몽골어, 한국어, 일본어 등)를 배우는 일도 만만찮게 어렵습니다. 우리는 접미사와 어미를 이용해서 자유자재로 의미와 문장성분을 변화시키기 때문이죠. 우리가 법과 태, 시제, 분사구문을 처음 본다면, 유럽인은 조사와 어미를 처음 봅니다.
이처럼 유럽인이나 동양인이 제2 언어로서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일이, 잘은 모르지만, 어떤 언어간의 교환보다도 어려운 이유는 주로 동사체계의 상이성에 있습니다. 또 각자 복잡하게 발달하기도 했구요. 지구 반대편이라 당연한가요? 암튼 동사체계가 서로 너무 달라서, 원래 모국어 습득과정에서 체득한 문법적 능력을 그대로 전용(轉用, 옮겨 사용함)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유럽인들에게 한국어는 지상 최고의 난제입니다. 일본어에는 별로 없는 높임말에서 거의 좌절하더군요. 우리 말은 높임말 체계에서 명사까지 달리 쓰니까요. ^^
유럽인들에게 '저희'의 용법에 관한 포스트(2008/08/29 - [systax & vocabulary] - 저희 - 높임법과 과공비례(過恭非禮))를 읽게 하면 아마 머리털을 쥐어 뜯으며 괴로워할 겁니다. 그런 점에서 미수다 언니들 참, 대단합니다. 아니, 우리 나라 학생들이 더 대단한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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