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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absurdity)』

키워드와 테마 2008/08/25 20:07


 :   도리(道理)에 안 맞음, absurdity;irrationality;unreasonableness
      예) 사회 부조리 social irregularities
      예) 온갖 부조리를 제거하다 do away with all kinds of irregularities


영어로는 absurdity라고 하는데요, 영한사전에 보면 이번엔 엉터리라는 순우리말로 번역됩니다. 그러니까, 엉터리라는 말은 불합리(不合理)하다는 말이고, 조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또, irrationality는 반(反)이성(理性)이라는 뜻이고, unreasonableness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랑 순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다른 언어체계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이리저리 뜻이 다 통하지요.

그런데 위 사전의 사용례를 보면 부정의(不正義, injustice)의 의미로도 사용되지요?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처럼 주로 부도덕한 것을 가리킬 때만 부조리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어쩌다 이런 뜻으로 사용되게 되었을까요? 정의나 윤리의 법칙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군말 없이 따르니까요. 보편성과 불변성, 합쳐서 절대성은 도덕법칙, 즉 윤리적 기준의 속성을 이룹니다. 그래서 절대적 도덕법칙에 반하여 정의롭지 못한 상태를 부조리하다고 부르게 되는 거지요.

우리는 “조리(條理)가 있다”는 말을 씁니다. “이치(理致)에 맞는다.”라고도 하지요. 세계의 절대적인 이치(理)를 전제하고, 그에 부합하면 옳고, 그렇지 않으면 옳지 않다는 겁니다. 참고로, 절대성이라는 말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불변의), 누구에게나 동일한(보편적인) 성질을 뜻합니다. 절대적인 이치는 보는 시기나 사람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리가 있다’는 말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옳다는 의미로 통합니다. 이런 일상적인 표현 속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세계의 절대적인 성질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입니다.

반대로 부조리(不條理)는 조리가 없다는 말이고, 세계의 절대적인 원리와 그에 따른 질서를 부정하는 말입니다. 기독교문명인 서양에서는 중세까지만 해도 세계의 절대적인 질서 그 자체였던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 나아가 근대에 들어서는 중세의 신을 대신해서 절대적 원리의 자리를 차지한 근대 이성(理性)이 없거나 그 존재의 현실적 부재상태를 의미합니다. 비이성적인 상태, 반이성적 현상, 무질서한 상태 등을 가리키는 거죠.

요컨대 부조리라는 단어는 대중적으로는 윤리법칙에 벗어나는 것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 사물의 절대적인 원리가 없다거나, 있는데 그 원리에 벗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부조리는 대중적인 의미가 아니라, 절대적인 원리의 부재를 확신하거나 혹은 부인해버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제 아래 글을 읽어보시면 부조리 개념과 실존주의를 좀더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짧은 요약도 하나 해보시죠.



아래 글을 읽고 화자가 시지프스의 행복과 부조리 사이에 부여한 관련성을 요약하시오. (200자)


…(전략)…그러나 압도적인 진리는 인식됨으로써 소멸된다. …(중략)…“모든 것은 좋다고 나는 판단한다.”고 오이디프스는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은 신성(神聖)하다. 이 말은 인간의 야성적이고도 한정된 세계 안에서 울려 나온다. 이 말은 모든 것은 창진되지도 않았고 탕진된 일도 없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말은 불만과 무용(無用)한 고통에 대한 감식안(鑑識眼)을 가지고 이 세계로 들어온 신을 여기에서 추방한다. 이 말은 인간의 문제, 인간 사이에서 해결 되어야만 하는 인간의 문제를 운명으로부터 이끌어 낸다. 시지프의 말없는 온갖 기쁨은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의 인간은 자기의 고통을 주시(主試)할 때, 모든 우상(偶像)을 침묵케 한다. 갑자기 침묵에 이른 우주 안에서 무수한 감탄의 작은 소리들이 대지로부터 솟아오른다. 무의식적이고 비밀스런 부름, 모든 얼굴들의 초대는 승리의 필연적인 이면(裏面)이요 대가(代價)이다. 그림자 없는 햇빛이란 없으며 따라서 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조리의 인간은 긍정으로 대답하며, 그의 노력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개인적인 운명은 있을지라도 초월적 운명이란 결코 없다. 혹 있다면 다만 숙명적이고 경멸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는 운명이 있을 뿐이다.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인간은 자기의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중략)…이제부터 주인이 없게 되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불모(不毛)의 것도 아니고 소용없는 것도 아닌 듯이 보인다. 이 바위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으로 가득 찬 이 산의 광물의 빛 하나하나가 유독 그에게는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족한 것이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관련 고전읽기 : 『시지프스의 신화』, 알베르 까뮈 (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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